옆자리를 드립니다 활동후기

함께 했던 활동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제목
18차 '옆자리를 드립니다!' 참여후기(2)
작성자
장애인먼저
작성일자
2014-10-13 15:23:44
조회수
3,648
2014년 9월 16일 화요일. 서초동 예술의 전당으로 향하는 그날 오후의 내 발걸음은 떨리면서도 이상하리만큼 긴장되었다. 9월 16일 화요일은 내가 장애 청소년들과 함께 저녁을 먹고 공연을 보기로 한 날이었다. 별 것 아닌 듯 보이는 이 계획에 내가 그토록 긴장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동안 수차례의 자원 봉사를 해왔던 나였다. 사실 봉사활동 신청을 했을 때 까지만 해도 나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접수가 되었다고 문자가 왔을 때도,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를 공지 받았을 때에도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헌데 그곳으로 가는 길, 나는 묘한 긴장감을 느꼈던 것이다. 버스 안에서 생각을 거듭한 결과 나는 그 이유를 문득 깨달았다. 그동안 나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또 장애우를 대상으로 하는 봉사는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나는 지금껏 살아오며 그러한 친구들과 만남을 가져본 적도 없었다.
걱정 속에 도착한 그 곳에는 이미 다른 봉사자들과 오늘 만나게 될 친구들이 모여 있었다.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각자 맺어진 짝. 나와 함께하게 될 친구는 태완이라는 친구였다. 태완이는 키가 꽤 크고 말수가 많지 않은 아이였다. 어색함을 무릅쓰고 인사를 했다. 저녁을 먹으러 이동하는 길에 우리는 각자의 이름을 이야기했고 태완이는 자신이 다니는 학교 이름과 자기의 나이를 말해주었다. 나는 조금 어색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했던 감동은 식사 중에 찾아왔다. 우리는 마주보고 식사를 하고 있었고 나는 어떻게든 불편한 분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시종일관 태완이를 주시하며 대화 거리를 찾고 있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먹던 중 태완이는 멍하니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그 시선을 따라가 본 곳에는 내 머리카락이 있었다. 아뿔사. 태완이에게 이야기를 하던 와중에 조금 길었던 내 머리카락 끝이 국에 빠졌던 것이다. 시종일관 별 말이 없었던 태완이는 테이블에 휴지가 없어 당황하던 나에게, “누나 머리카락에...” 라고 작게 말하며 가방에서 꺼낸 티슈를 건네주었다. 나는 적잖이 놀랐다. 나와의 시간에 별 관심이 없어 보였던 태완이가 사실은 나를 주시하고 있었고 나에게 그 작은 배려를 베풀어준 사실이 너무나 고맙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렇게 저녁을 먹고 나니 태완이가 한결 편해졌다. 나에게 먼저 손잡고 가자고 말해주기도 했던 것을 보면 태완이 역시 그랬던 것 같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처음으로 태완이가 적극적으로 대화를 이어 나갔던 주제는 바로 ‘그림’이었다. 태완이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태완이는 환하게 웃었다. 조금 설레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서로에 대한 경계가 풀어지기 시작했을 때, 공연은 시작되었다. 멋진 첼로 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손을 잡고 있었고, 가끔 속닥거리기도 했다.
짧은 만남을 마치고 아쉬움을 뒤로한 채 헤어짐을 고하면서 나는 기분이 꽤 좋았다. 처음의 걱정들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태완이와의 잠깐의 만남은 나에게 여러 가지 생각이 들게 했다. 그 첫 번째는 나도 모르게 그들에게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나와는 다르기 때문에 불편할 수 있다는 편견 말이다. 나는 지금껏 이 편견을 깰 기회가 없었기에, ‘장애인’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동정심과 더불어 불편함을 느껴왔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했다. 그리고 나의 생각과 인식이 정말 ‘편견’에 불과했음을 깨달았다.
두 번째로는 ‘다르지 않음’이었다. 나는 당연히 그들이 동정 받아야 할 나와는 다른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그것 역시 틀렸다. 그들은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단지 조금 약할 뿐이었다. 그들이 장애를 가졌다 해서 사람들이 차별과 동정의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본다면 오히려 그들은 그러한 시선에 상처받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다르지 않음을 받아들이고 조금의 배려만 있어도 충분할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장애우들은 사회에서 ‘다르다’는 인식 속에서 자행되는 차별에 움츠러든다고 한다. 그들의 육체와 정신이 우리보다 조금 약하다 하여 그들의 마음까지 약한 것은 아니다. 차별받기 싫어하는 마음은 우리와 다르지 않으며 동정의 시선 역시 불편하다. 그들 역시 따뜻한 마음을 가졌고 꿈이 있으며 그 꿈을 이룰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다. 적어도 내가 만났던 태완이는 그랬다. 이 후기를 적어 내려가는 중에도 태완이의 따뜻한 웃음이 마음에 남는다. 우연치 않게 참가하게 되었던 이 몇 시간의 짧은 만남 속에서 나는 참 많이 배웠다. 마지막으로, 태완이가 희망했던 그 꿈이 꼭 이뤄지기를 바라며, 차별과 편견 속에서 괴로워하는 많은 장애인 친구들을 응원하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