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자리를 드립니다 활동후기

함께 했던 활동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제목
2015년 1, 2차 '옆자리를 드립니다!' 참여후기
작성자
장애인먼저
작성일자
2015-07-19 19:23:25
조회수
3,408
서로의 빈 부분을 채워준 우리는 소중한 친구!
 
 
"당신은 도움이 필요한 장애인을 본다면 도움을 줄 수 있습니까?"
'옆자리를 드립니다'를 시작하면서, 그리고 마무리하면서 작성한 설문지의 내용이다.
처음 작성할때 내게 장애인이란, '어딘가 결함이 있기에, 도와줘야 하는 사람들'의 일부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리고 장애인 각각의 개성과 인격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두 번에 걸친 행사 참여 때 내가 만난 두 친구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한 친구들을 보며, 자원봉사에 참여한 사람들도 각기 다른것처럼, 장애인들도 개개인이 달랐다. 그렇기 때문에 참가한 자원봉사자들의 소감도 다양하겠지만 내가 느낀것과 비슷하지 싶다. 그래서 첫 질문에 대한 답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한다'에서 '내가 직접 돕는다'로 바꼈다. 하지만 장애인들도 각자 비장애인과 같이 대우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 못지 않게, 무조건적인 또는 통념으로 인한 맹목적인 동정이나 지원이 아니라, 함께 어울리고 개인을 존중해야 함을 몸소 깨달았다.
상술한 내용은 사실 '옆자리를 드립니다' 홍보문이나, 안내 팜플릿, 사전 교육은 물론이요 글로는 어디선가 봤던 것이다. 그런데 경험이 많이 없다보니 도대체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함께해야 하는지 잘 몰랐다. 솔직히 가장 많은 계기가 되는 복지시설 방문 등을 통한 취약계층을 돕는 봉사활동은 너무 틀에 박혔다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 자원봉사에 대해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이 아닌가 했다. 그런 와중에 공공장소에서의 체육,문화 여가활동 함께하기는 굉장히 신선하고 또 마침 활동내용인 연극과 야구가 관심분야기도 해서 '자원봉사'에 대한 의무감이 있긴 했지만 매우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 좋은 경험이 된 데에는 함께한 아이들의 적극적인 관심 또한 꼽겠다. 이번 활동 전에 가졌던 장애인에 대한 편견 중 다른 하나는 "자존감이 낮거나, 혹은 지나치게 자신의 세계에 몰두하여 타인과 어울리기 힘들 것이다"는 것이었다. 일부는 실제로 그렇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그리고 특히 나와 함께한 친구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거나, 이를 극복하고 기꺼이 자원봉사자들과 잘 어울릴 수 있었다. 실제로, 두 번 모두 매칭된 장애우의 명찰에 각각 다른 사정에 의해 실명과 다른 이름이 적혔는데 명찰의 주인들은 이를 굉장히 아쉬워(혹은 분해)했다. 나라면 오타가 있거나 타인의 명찰이 내게 왔다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것 같은데, 이름이라는 그 친구의 극히 일부분이지만 스스로 자기 자신에 대해 자존감이 대단 하지 않으면 그 정도로 소중히 할 수 있었을까? 비록 몇 명이지만 내가 직접 옆에서 함께한바 장애인들이 우리 같은 비장애인과 조금 다른 생각을 할지라도, 말을 잘 못하고 들을지라도, 잘 못볼지라도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길줄 알며 그렇기에 직접 말로 듣지는 못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들을 같이 향유하고 싶다는 매우 강한 의지를 직접 확인했다. 서로가 이 프로그램을 취지를 이해하고 동의하니 그 이후에는 같이 즐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비록 주변 친구들과, 혹은 가족들과 아니면 혼자 즐길 때처럼 내 의지대로 자유롭게 활동하기에는 제약이 있었지만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1주차에 야구경기를 함께 관람한 혁진이는 지적장애를 가졌다. 그 외에 신체는 운동으로 다듬어져 나보다 훨씬 건강해보였고 굉장히 파이팅이 넘쳐서 매우 강하게 기억이 난다. 그 친구가 환호하면 같이 호응도 해주고 원하는대로 잘 안풀리면 같이 아쉬워하고 또 경기에 집중하면 나도 같이 그저 경기장을 바라보며 약 3시간을 보냈다. 헤어질 때까지 매우 적극적으로 의사표현을 하던 혁진이를 당일 일정이 끝난뒤 되짚어봤을 때, 자신과 같이 즐기는 친구가 있다는 것도 많이 기뻐했지만 트인 공공장소에서 다른 비장애인들처럼 여가를 즐기는 사람 중 한 명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즐거움 뿐만 아니라 자부심도 갖은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폐쇄적으로 비칠 지도 모르는, 경기 관람 후 진행 예정이던 학교 수련회 일정으로 다시 돌아가기 싫었던 것일지도... 처음 대면했을 때 아마 이전에도 비슷한 행사에 참여한 자원봉사자의 안부를 내게 묻던데 (그 질문에 당시의 봉사자 분을 전혀 알지 못하지만 잘 지낸다고 앞으로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판단력이 온전치는 못하다고 해도 확실히 그런 추억들을 매우 소중히 여기는 것 같아 그날 하루도 좋은 날이 되었을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앞으로는 그 친구에게 '특별한' 활동, '특별한' 날이 아니라 원하면 언제든지 할 수 있는 '다른 사람들과 같은' 즐기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2주차에는 나의 노력이 조금 더 필요할만한 친구가 예고되었다. 청각장애를 가진 여학생, 주은이가 매칭되었다기에 난생 처음으로 실전용 수화를 연습해가고, 비상시에 문자를 칠 수 있는 휴대폰 배터리를 수통에 물채우듯 꽉꽉 채우고 여분의 메모지도 챙겼다. 그런데 막상 만나보니 시각 쪽에도 장애가 있고 거동도 불편한 친구였다. 다른 것보다 시각적인 의사소통에도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에 조금 당황했고 또 공연은 관람할 수는 있는지, 그리고 다른 아이들보다 의사표현이 잘 안되니 주은이의 속마음을 잘 알수가 없어 정말 즐거울지 걱정이 많이 되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그 날 내내 주은이는 신나있었고 연극 내내 다른 친구들처럼 웃고 울고 있었다. 온갖 기우에 빠져있던 내겐 기적에 가까워 보였다. 과연 무엇에 그렇게 들떠있었는지 내게는 계속 의문이다. 그 날 의사소통은 거의 쌍방간이 아닌 내가 주은이에게 일방향으로 이루어졌고, 한두번을 빼고는 미소로 화답하는 긍정의 표시를 나타냈기 때문에 정말 그 모든것이 자의였는지 정말 궁금하다. 다만 그 계속된 싱글벙글한 미소와 마지막 헤어지기 전에 '즐거워?'라는 질문에 끄덕인 것으로 미루어 정말 즐거웠을 거라고 믿는다. 정말 교육받은대로, 누군가 함께 있어준 것만으로 큰 힘이 되었던걸까? 그랬길 바란다. 오히려 이래저래 부족했던 내쪽에서 너무나 고맙다.
 
여차하여 모든 일정이 끝난 뒤 귀가하여 약간 피곤하긴 했지만 성취감도 느끼고 내용도 괜찮았다고 자평하면서 누운 뒤 그 날마다의 활동을 복기하였다. 마냥 자축하려 했지만 스스로에게 진지한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이미 교육을 받았던 내용의 일환이지만 이런 특별한 계기 없이도 장애인들과 가까워질 수 있을까?
두 번의 행사에서 비단 나와 매칭된 혁진이와 주은이 말고도 다른 친구들(간혹 어르신도 계셨다.)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다. 나의 파트너보다 더 힘들어보이는 친구들도 꽤 있어서 '우린 양호한 편이구나'라고 내심 감사할 때도 있었는데, 반대로 어디가 안 좋은지 언행을 아무리 봐도 알수 없었던 친구들도 있었다. 물론 대화가 많이 진행되면 차이를 드러내고, 명찰 등등의 표식이 있어 '우리가 함께 할 친구들'이라는 걸 알 수 있었겠지만 그걸 구태여 확인하려 하지 않았다면 장애인인지 비장애인인지 구분하기 힘들었을 것 같다. 그런 친구들을 맡았던 다른 자원봉사자 분들께 직접 이러저러한 것을 물어보고 싶을 정도였다.
장애에 대해 교육을 받았던 내용이 다시 생각났다. 장애에도 경중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모든 장애인이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는 것은 편견일 뿐이라고... 그런 무의식중의 편견이 이번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전에 나의 파트너에 대해 눈을 낮추게 만들고, 장애가 나와는 멀리 있는 것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비교적 양호하다고 하는 친구들을 보며 많은 장애인이 나와 가까이 있지 않다는 건 이전의 생각과 달라지지 않았지만, 반대로 나와 매우 가까운 곳에도 그들은 많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확한 내막은 잘 알 수 없어도, 내 눈에 비친 그들과 우리 사이에 굳이 다른 점을 찾자면 종이 한장 정도? 즉 질문에 대한 답은 사회적으로 널리 퍼진 편견만 없으면 얼마든지 ok라고 결론 내릴수 있었다.
 
이미 말로는 수십번도 들었을 그 해결책을 스스로 되짚어서 깨달았더니,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던 짐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이번 프로그램 중 가장 힘들었던 때는 1주차 때 혁진이와의 헤어짐의 시간이었다. 아주 극히 끝났다고 오히려 좋아하는 친구들도 있었고 대개는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만남을 매조지하는 친구들도 있었는데 유달리 자원봉사자들과 헤어지는 것, 혹은 함께한 시간 자체가 마무리 된 것을 안타까워하는 친구들도 몇 있었고, 야구 경기 관람때 내 옆에도 그런 친구 한 명이 있었다. 서로 '다시 만나자' 하고 헤어졌는데 이번 프로그램 전체 기간중 가장 마음이 무거운 순간이었다. 혁진이가 말로는 수긍하면서도 반쯤은 다시 보기 힘들거라고 체념하는듯한, 그나마도 인솔한 교사의 손에 석별의 장도 급히 마무리된 것, 때문에 내가 혁진이를 속이고 있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하지만 평상시에 내가 다른 사람과 야구경기나 연극을 보고 나서, 옆의 친구에게 '재밌었네. 잘 들어가라'라고 넌저시 건네는 말 사이사이에 생략된 내용은 '좀 더 봤으면 좋겠는데 벌써 끝이 났네. 너하고도 오늘은 여기까지네. 다음에 보자' 라고 풀 수 있을 것이다. 누구든 즐거운 시간이 끝나면 다시 치열한 일상으로 돌아오기에 어딘가 아쉬움이 남기 마련일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혁진이에게 내가 한 행동을 부정적으로 해석한 것이 너무나 바보같았다. 단지 그 날 혁진이는 매우 즐거운 경험을 했고, 그렇기에 더욱 아쉬움이 컸을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주은이와의 두 번째 헤어짐 때는 아무런 부담감 없이 'Say goodbye' 할 수 있었다.
 
프로그램 진행 중 이동간에 한 인솔자 분께서 내게 물었다.
"전공이 어떻게 되세요?"
"도시공학 전공입니다."
"어떤 걸 배우나요?"
"비단 도시개발 뿐 아니라 기존 도시에 산재한 여러 문제들에 대한 해결방안을 익혀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드려고 합니다."
"그러면 장애인들을 위한 시설 확충이 더 활발히 되었으면 좋겠는데요."
"장애인들에게 완전히 이상적인 조건을 만들기에는 현실적으로 여건이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실제로 물리적인 정책이나 사업 시행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실제로 들어가는 비용만큼 얼마나 금전적 수입이든, 혹은 사회적 비용 감소를 통한 편익이 되느냐니까요. 하지만 다행히도 최근에는 기본적으로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한 시설이나 구조가 많이 반영되어가는 추세라 다행이랄까요. 다만 지금 이쪽 분야가 제가 대학교 입학할 즈음부터 경기가 좋지 않다보니 그렇게 전망이 밝지는 않아서.. 그래서 여건이 좋아진다면 아마 지금보다 말씀하신 부분이 훨씬 잘 반영될 거라고 생각해요."
"하하, 그렇군요."
장애인들에게 열악한 물리적 여건은 어느 곳에서건 오래된 묵은 문제다. 그래서 어느 직위에 있든 나는 내 분야에서 그런 취약계층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역군이 되려 한다. 하지만! 장애인들에게 물리적인 제약은, 많은 노력과 시간이 소요될 뿐이지 왠만큼 극복이 가능하며, 제일 힘든 부분이 아니라고 하였다. 가장 힘든 것은 다름아닌 타인과 다르게, 틀리게 보는 그 시선 자체라고. 이런 편견을 조금이나마 타파할 수 있는데 이 '옆자리를 드립니다'라는 프로그램이 나름 쉬워 보여도, 다른 활동만큼이나 도움이 꽤 된다고 자신한다.
한 친구에게 사전교육때 받은 내용 중 일부를 메신저로 보냈다.
"장애인들은 문화활동을 즐기는데 여러 제약이 많아서 대부분의 여가시간을 TV나 컴퓨터 등의 매체를 통해 보낸다더라."
곧 답장이 왔다. "ㅋㅋ 그거 너,,우리 아닌가? 너도 가서 꼭 하고와라."
 
타인을 돕는 성취감을 얻어가고 싶으시면서 동시에 자신도 평상시에 잘 하지 못한 문화활동에 참여하고 싶으신 분들. '옆자리를 드립니다' 꼭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