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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이 달의 좋은 기사- 행복의 창/ 안내견 키워주는 자원봉사자 퍼키워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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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3-09 11:5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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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84

 2005년 1월 '이 달의 좋은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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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목

1

한겨레

신문

1. 13

임인택

생활/여성

행복의 창/
안내견 키워주는 자원봉사자 퍼피워커

 

 김예지(25)씨는 숙명여대 교육대학원에서 음악교육을 전공한다. 시각장애인이다. 그를 안내견 ‘창조’가 이끌어준다. 4년째다. 이젠 연주회가 끝날 즈음엔 창조가 먼저 떠날 채비를 한다. 지난해 2월, 정부는 ‘21세기를 이끌어갈 우수인재상’을 주기 위해 김씨를 청와대로 불렀다. 담 밖의 개가 청와대에 들어간 적은 없다. 하지만 김씨는 창조를 데려갈 수 없다면 상을 포기하겠다고 말했다. 창조는 그렇게 처음으로 청와대 영빈관에 들어갔다. 김씨가 학부를 졸업하던 지난해. 함께 꽃다발도 목에 걸었다. “우리 창조, 특별한 아이잖아요.”

시각장애인과 안내견의 적잖은 감동의 무대 밖. 외로운 조연, ‘퍼피워커’가 있다. 생후 7주 된 후보 안내견을 집에 데려다가 기초 사회화 과정을 가르치는 자원봉사자다. 1년여 정성스런 구듭 뒤 소리 없이 이별하고 사라진다. 황명화(37)씨가 그렇다. ‘큰별’이와 둘째 ‘망고’를 길렀고, 10마리도 넘는 강아지가 황씨 집을 거쳐갔다.

“퍼피워커들은 스스로 ‘쌈닭’이라고 불러요.” 2000년 개정·시행된 장애인복지법은 장애인 보조견의 편의시설 접근권을 보장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막무가내 손을 내젓는다. 개에 대한 멸시는 장애인을 겨눈 것이고, 장애인에 대한 편견은 개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법이 없던 때는 사정이라도 하지만 법도 무시당한 때는 악이 받친다.

“유람선을 태우고 싶었어요. 큰별이 만날 시각장애인이 유람선을 타고 싶을지도 모르잖아요. 매표 직원부터 영업 방해한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박대했습니다. 회사 방침인지, 개인 편견인지 밝혀야겠다고 이름을 물었어요. 패찰을 집어 던지더군요. 엉엉 울었어요.” 시각장애인과 안내견이 유람선을 탈 수 있던 것은 이 ‘사건’이 발생한 2002년 8월부터다.

처음엔 법적으로 보호받는 이 제도를 이용해 곰살궂은 강아지 하나 키우겠다는 심사의 황씨. “하지만 만날수록 누군가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안내견이 대견해 보였어요. 15개월을 기다려서 겨우 큰별이를 분양받았습니다. 제가 키운 개가 누군가의 눈이 되어 보행하는 일을 상상했죠.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마음처럼 행복과 보람을 알게된 거예요. 결국 서울 잠실에서 용인 수지까지 이사왔습니다. 석촌호수를 산책할 때 열 가운데 셋은 손가락질을 했거든요.”

하지만 망고는 안내견 학교에서 교육 중이고, 큰별이는 예비 안내견 훈련이 끝난 뒤 치러지는 자질 심사에서 선천성 관절 기형으로 떨어졌다. 상실감이 컸다. 게다가 큰별이는 유전성 발작 증세로 사선을 넘나들었다. 안락사까지 거론됐다. “당연히 제가 맡겠다고 했어요. 퍼피워킹을 거치며 받은 스트레스 따위로 혹 고통스러웠던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불명예 은퇴견인 큰별이는 이제 그냥 병든 애완견이다. 주인은 하루 두 차례 독한 약을 먹이고, 다달이 간 기능, 혈액검사를 해야 한다. 한 달에 20만원이 들기도 한다. 24평 아파트 곳곳이 큰별이 요양처다. 그래도 온몸이 마비된 채 숨을 헐떡였던 때에 견주면 황씨는 행복하다.

“‘개한테 무슨 그런 걸!’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하지만 사람과 동물의 경계를 넘어 생명을 사랑하고 책임지는 일은 같다고 봐요. 만나지 않았다면 모르겠지만, 한 생명이 제게 준 깨달음과 기쁨을 기억하는데 본능적으로 같이 아프고, 보살피게 되는 겁니다. 그게 행복 아닌가요?”

안내견에 대한 인식도 많이 나아졌다 한다. 그래도 계단은 여전히 높고 버스는 여유가 없다. 극장은 비좁다. 점이 닿으면 선이 되고 선은 면이 된다. 케인(안내용 지팡이)으로 길을 내는 시각장애인들은 점이나 단선의 삶을 산다. 보지 못할 뿐 만감이 살아 쉬는 인간에겐 고통이다. 온 신경을 케인 끄트머리에 집중해야 하는 그들은 집에 들어오면 쓰러지듯 눕는다. 케인으로 40분 거리를 10분으로 줄이는 게 안내견이다. 안내견의 발자국이 선이 되고, 면이 된다. 시각장애인의 삶은 그렇게 입체적으로 변한다. 그 마술의 작은 비밀이 퍼피워커들에게 있다.

용인/글·사진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 한마리 안내견 거듭나기위해 /다른나라보다 많은 장애물 적응 길게는 1년 심화훈련 받아야

지난 6일 용인의 삼성안내견학교(사진). 산자락 싸락눈이 매섭던 날, 실내 견사의 16.3도의 온도와 43.1도 습도의 배합보다 마음을 더 쾌적하게 한 건 안내견들의 이름이었다.행복, 마음, 희망, 낭만 등. 1년여 퍼피워킹 과정 뒤 학교로 돌아와 전문 훈련을 받는 레트리버 종이다.

학교에서 교배된 레트리버 종자가 생후 7주 뒤 ‘퍼피워커’들에게 보내진다. 모두 자원봉사자다. 지금도 대기자만 300명이다. 개를 분양받기까진 1년이 넘게 걸린다. 물리적 여건과 자세 따위를 학교에서 심층면담해 뽑는다.

퍼피워킹 중에는 기다림을 배우고 식탐을 통제하도록 돕는 일이 중요하다. 장애인이 필요할 때 이동을 돕는 게 몫이기 때문이다. 복종과 배변 가리기 등 모두 퍼피워커에게 배우는 기초 사회화 과정이다. 그사이 만들어지는 행복스토리가 최근 나온 〈사랑해 큰별아〉(창해 펴냄)에도 담겨 있다.

전문 훈련은 6~12개월 걸린다. 복귀해 자질 심사를 하면서 체형, 기질 등으로 1차 탈락견을 가린다. 명령을 판단하는 일이 중요하다. 소심하거나 일로 스트레스를 받아서도 안 된다. 그를 위해 3천만~5천만원 가량이 쓰인다.

1994년 문을 연 학교는 지금까지 93마리(현재 53마리)의 안내견을 무료로 훈련시켜 사회에 내놓았다. 학교의이동훈 과장은 “우리나라 안내견은 다른 안내견보다 2~3단계 높은 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웃으며 말한다. 길이 복잡하고 인적, 물적 장애가 많아서다. 보조견이 있는 30개국 중 실력이 최정상인 셈이다. 퍼피워커들이 시간과 정성을 들여 그 기초를 다져놓은 것이다.

임인택 기자